-
드러난 숫자는 빙산의 일각. 무조건 20대 대통령 선거는 57% 야당 승리로 예상자료가 나타났었다. 작은 표차이로 패배했다 하지 말고, 또 승점이 아슬아슬 했다고 현기증 난다 하지도 말자. 인고의 지난 5년, 그리고 탄핵과정까지면 6년 가까운 세월이 너무 길었다. 때로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심할 때는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극심한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까지다. 그만 싸우자. 편 가르기 계속하다가는 함께 망하는 수가 있다. 싸움 또는 편 가르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초 중반의 위상을 가늠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03.16 11:17
-
기독교 신자가 다른 종교 사람들과 시비하는 것을 볼 때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타 종교인들과 종교시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라서 말한다면 타 종교와 시비나 하는 수준의 종교적인 확신 수준은 아직 많이 미숙한 수준이기가 쉽다.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까지 믿음의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동일 조상이다.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구약성경 내용의 절반 가까이가 이스마엘과 에서는 물론 그들의 자손들
22세기 대안
조효근
2022.02.18 16:03
-
낡은 시대의 퇴장에 이어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늘 그랬듯이 이 충격이 또 지나가면 가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려 들지 마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어디에 있겠느냐 하지도 마라. 세상살이란 호락호락 하지 않다. 혹시 주변으로 부터 저항이나 공격이 없으니까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안도하기에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은 너무나 절박하다. 이념 제국화 하려드는 좌파 정치 세력들과 전통세력들 간에 균형 잡힌 역학관계를 마련해 주어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한국교회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2.01.14 11:04
-
최상급 표현법으로 교회는 예수(새끼예수) 양성소이고 출생지다. 기독교 표현법으로는 참람하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데 요즘은 “새끼예수”라는 말은 크게 거부감을 않는 것 같다.예수 양성소보다는 ‘예수 계시는’이다.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한다’ 하신 말씀을 상기하면 좋다. 이같은 인격이 아니면 예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 세계교회는 교회정의가 불확실해서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으나, 예수 올바르게 배운 사람들은 예수가 교회에 계심을 안다. 또 예수는 필요한 분량의 자식을 낳는다. 교회 출입자들 중에는 단
22세기 대안
양승록 기자
2021.12.21 11:28
-
코로나 19로부터 실컷 조롱을 받았던 지난 2년 가까운 시간들, 분하고 억울했다. 겨우 질병균 하나에 하늘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쩔쩔매고 숨죽여 지냈으니 다시 생각해도 분하고 억울하다.이제는 안고 가자, 돌파해 가자. 중증 환자 위주의 치료시설 거듭 확인하면서 사망자 최소화 전략으로, 위드 코로나 전략을 제시하는 당국자들을 바라본다.그러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초기부터 교회에 소속한 그리스도인들의 방역은 질병관리청 도움을 받아서 자율적으로 해결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율은커녕 질병청 당국의 지탄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왜, 교회를 차별
22세기 대안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1.11.19 15:16
-
가능한 일이라면 “재 창간”을 하고 싶다. 본디 “들소리”가 신문제작에 뛰어들었던 것은 자기 현재를 못다 헤아린 착오였을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돌파구로 선택했었다. “들소리” 10년차가 되었을 때 기성교회와의 거리가 나는데 자칫 ‘이단자’ 소리를 듣게 될 처지였다.그때 필자는 기존의 프로테스탄트(신교) 한국교회와 들소리 운동 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교회가 지향해가는 개혁운동에 발을 맞춰보자는 뜻으로 신문 발행을 병행했었다.그러나 곧바로 후회가 찾아왔다. 신문이란 문명구조는 교회개혁이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신문발행을
22세기 대안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1.10.16 10:07
-
위기의 때에 교회는 국가들이나 심지어 유엔(UN)기능을 뛰어 넘는 세계적인 조직망을 동원 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향한 흉악한 범죄 현상이기 때문이다.질병관리청, 각 지역 보건소, 주민센터로 조직망을 이어가는 코로나19 대한민국 행정조직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한국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인 특히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신교 출신으로 부끄러움을 크게 느낀다.대한민국 정부의 “K방역조직망”은 손색이 없는데 한국교회 코로나위기 대처방안은 부족사회 수준임을 비교해 본다. 비교대상이 아닌 듯 보이면서 국가위기에 처한 정부의 대응력과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6.04 18:16
-
기독교는 유대교를 왜 이토록 무자비하게 혐오하고 박해하는가? 또 하나는, 왜 기독교는 절대 유일의 종교 신분으로 “이슬람”을 다시 가르치고 사촌의 예로 대하지 못할까? 또 삼위일체론을 힘으로 왜 강요하는가? 60여 년 전 세계교회사를 읽었다. 그때 필자는 신구약 통독 10회 정도의 공부 진도가 있던 때였다. 세계교회사 독후감은 “매우 위선적이고 비겁하다”는 결론이었다.” 겹따옴표 안에 담은 필자 독후감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살 때의 필자 평가는 60여 년 지난 오늘도 변함이 없다.“들소리” 깃발을 내걸고, 필자는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5.06 11:07
-
그 길은 예수부활, 세속어로는 “예수 혁명”의 길이다.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 겨우 지금 수준의 파괴력을 가진 교회를 만들려고 세상에 오셨겠나? 훨씬 더, 충분히 세상을 선두에 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교회가 예수의 포부였다. 그 많은 인종 갈등, 빈부 격차, 인권 말살 지구를 단숨에 죽은 돌덩이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 인간들 가슴 속에 가득가득한 증오심들. 아이고! 숨차다!부활절기, 부활의 예수가 2021년 봄 우리에게로 오고 계신다. 믿느냐? 나를 믿는 자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3.30 18:11
-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도무지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 기독교 신학체계, 특히 바울 선생의 탄탄한 신학적 토대에서 이 글이 과연 가능한가? 혹시 바울의 13편 글 중에서 에베소서는 대필(代筆)로 분류되는 것이기에 바울이 감수과정에서 손이 빠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본문 에베소서 1장 1절에서부터의 흐름을 보면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에 이르러서 우리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과장된 말씀이 터져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3.04 14:10
-
어리석은 묵시록 교육은 이 땅을 버리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 세상“ 또는 ”죄악 세상“, ”버림 받은 땅“ 등의 표현은 도덕률 교육이나 종말사상을 말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언어의 한계다.하늘과 땅은 똑같은 속성을 갖는다. 이분법 이원론적 가치에서 나타난 하늘땅은 성경적인 표현이 아니다. 소위 아버지(남자)는 하늘, 어머니(여자)는 땅으로 표현을 두고 양성 평등론자들은 차별이라 하는데 바로 이 같은 논법은 잘못된 기독교 이해에서 오는 과오다.“하늘이 곧 땅이다”라는 논리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2.04 17:24
-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뒤, 한국교회는 외형상 예배당 숫자가 반 토막이 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절반 정도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이른 바 목장을 잃고 안타깝게도 목자 잃은 양 무리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초기 확신이었던 ‘만인제사론’을 상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에 등장한 만인제사론의 출발은 구약 선지자들의 중심예언이었고, 메시아 예수의 성취물이고 모범이었다. 속사도 시대까지도 그 정신을 유지해 오다가 거룩한 공동체(Holy Catholic Apostolic Chu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1.01.14 22:39
-
하나님 공의의 정당성과 사랑의 완전을 만족할 만큼 성취한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를 언제까지 등지고 살려고 작정하였는가?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이여! 아쉽지 않을까, 억울하지도 않겠는가?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예수를 입술로만 노래하고 증거하는 날 속에서 살아왔기에 사단이 우리를 지금은 얕보는 거다. “믿습니다”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내 몸을 던지는 희생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몸의 언어, 육체 언어다. 이를 예수께서는 “그 나무의 열매”라고 해석하셨다. 열매는 봄, 여름, 그리고 가을에 이르러서야 맺히는 알맹이다. 헌신과 희생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본지 발행인)
2020.12.22 23:34
-
“관념과 형이상학의 함정을 피해 성취한 골고다 그 피 뒤집어 쓴 예수가 성경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의 몸으로 쓴다는 것이다.” 예수, 메시아이신 이가 우리 가까이 오사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하셨을 때 이 말씀을 누가 믿었나? 아마, 믿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을 아직도 “미공개 복음서”로 확신하고 있다. 사도시대, 속사도(사도 후) 시대에도 정리하지 못한 교회는 16세기에 이르러서 접근하는 듯 했으나 다시금 ‘종교시대’의 함정 속으로 떠밀려 갔다. 어찌할까?!시대는 어느덧 올 때까지 온 절망과 절박의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12.03 10:49
-
“작고, 못나고, 무가치해 보이는 생명체들도 함부로 취급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북한식 인명경시의 폭정이나 이웃나라인 대한민국을 깔보는 중국식 사회주의 공산세력의 영향력을 경계한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 총통의 국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당 정권”을 세웠다. 그해가 동북아 앞날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해였다. 바로 4년 전인 8.15 광복의 기쁨도 1948년 자유 대한민국 정권을 세운 감격도 잠시, 바로 그 이듬해인 1950년 6.25는 모택동의 중공군과 스탈린의 소비에트연방의 정치 기술적 지원을 받은 북한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11.04 15:05
-
“한국교회는 교회의 대표성을 찾고, 전체 신자와 목회자들의 의사결집까지 해내는 성숙하고 겸허한 방법론을 찾아내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을 만났다, 무슨 말씀인가? 이 지구상에는 별스럽게 험하고, 추악할 뿐 아니라 도덕파기는 물론 폐기해 버린 짐승들 집단도 많이 있었는데…?오늘의 한국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가운데 광복을 맞이했고,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사이에 두고 남북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피차간에 피해를 많이 본 당사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 시기인지라 우리들의 환경이 너무 어렵다.그러나 한국교회는 일반사회인들과 다른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08.15 09:45
-
한국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선물하신 “신(新) 바벨론 포로기”를 잘 견디면 예수가 매우 가까이에 계심을 확인하는 날이 온다. 무엇보다 복음의 완성도에 접근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예수의 모습”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인데 기독교는 초기 교리 설정과정에서 9부 능선 이상의 돌파를 못했다. “예수 모습” 더 나아가서 “예수로”까지 발전해야만 예수를 배운다 할 수 있는데 기독교는 그 길 찾아가기에는 아직 절차과정이 남아 있다. 그래서 신(新) 디아스포라 시대가 오게 되어 있다.중생이 부처요, 사바가 니르바나로까지 비약하는 대승논리 앞에서 우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07.15 19:29
-
국회의원 개개인은 “입법기관”이다. 교회도,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최소단위의 “교회”다. 루터시대 하나님은 이 복음을 주셨는데 한국교회는 이를 배우지 못했다. 1988년 올림픽이 막 끝나고서부터 동·서 냉전체제가 기울더니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을 대적해온 공산당이 언젠가 무너질 줄 내가 이미 알고 있었지…, 라고 기독교 신자들이면 대개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다.그러나 공산당 세력이 저절로 무너지는 것 아니다. 주변 환경과 자체 입장에 따라서 생명력이 다르다. 그것의 증거가 중국, 러시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05.20 23:36
-
예수처럼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여! 우리 모두는 하나, 단 한 사람처럼, 부활예수의 영생하는 생명 앞에서 우리는 하나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 이 말씀을 내가 믿는다. 이 한 번의 말씀으로 내게는 생명의 완성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의 말씀이고 명령이기 때문이다.드디어, 부활선언이다. 예수부활, 곧 나 믿는 자의 부활이다. 이 말씀을 올곧게 믿는 자는 현재완료형 부활에 참여한다. 그의 부활은 영원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04.08 15:23
-
한국교회 지도층은 격랑에 휘둘릴 대한민국이 더 이상 흔들리지나 위태로워지지 않게 해 달라고, 정부 담당자나 국방을 책임지는 군장병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생각보다 유행기간이 더 길어질 듯한 코로나19가 세계적 과제로 등장했다. 빨라도 8월까지는 가지 않겠는냐는 얘기가 나온다.한국교회는 금번 온 국민과 세계가 고통 하는 때에 방역에 대해서 모범을 보여주는 적극성을 가져주기를 원한다. 현재, 정부나 방역당국이 주일예배 모임을 잠정 중단해 달라고 요구한다.이런 때에 교회는 어떻게 할까? 신자 숫자가 많은 교회는 별도의 예배방식을 찾아보고
22세기 대안
無然 조효근
2020.03.25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