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특집 / 마음 담은 교계 인사들 축하메시지 및 당부(2)

정론직필을 기대하며

▣ 전명구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 들소리신문 창간 40주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드리며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위에 놀라운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들소리가 어느덧 40년, 사람으로는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불혹이란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들소리가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는 당당함과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일 것입니다. 
그동안 언론들이 권력의 주변을 맴돌고, 금권에 휘둘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실망들을 하였습니다. 신의를 저버리고, 신앙양심도 저버리는 기사들을 보면서 대단히 안타까웠는데, 들소리신문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한국교회를 향하여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세가 오늘의 들소리신문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새로운 40년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큽니다. 앞으로의 40년은 정론직필(正論直筆)로 한국교회에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개혁과 신앙생활의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송곳과 같이 지적하고 진돗개와 같이 물고 늘어지는 진정성 있는 씨름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음 담지한 교회다움의 길 제시해 주길

▣ 윤세관 총회장/한국기독교장로회 = 들소리신문 창간 40주년을 축하합니다. 한국교회의 척박한 현실에서 초교파지로서 40년간의 걸음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를 향해 ‘초대교회로 돌아가라’는 일성을 줄곧 토해내며 교회다움과 그리스도인다움을 촉구해온 들소리신문의 변함없는 모습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국교회는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교세 하락이 계속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교회 안까지 깊숙이 침투한 맘몬의 영향으로 세상과 구별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진단이 높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새로움을 향한 반성과 각성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구체적인 몸짓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들소리신문이 좀 더 힘을 내어 복음을 담지한 참 교회가 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크고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 낮고 낮은 자리에서 일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교회가 되도록 그 길을 계속해서 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도록 앞장서 달라

▣ 백종국 이사장/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들소리신문의 창간 40주년을 축하합니다. 
들소리신문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모토 아래 출범하였고 초교파 언론매체로서 지금까지 많은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나라만을 추구하는 광야의 소리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여 들소리신문의 사명은 더욱 새롭습니다. 어느 종교든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종교 내 권력과 금권의 남용으로 부패하고 쇠퇴합니다. 
대표적으로 고려의 불교라든가 조선의 유교가 그러한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복음의 전래 이후로 명실공히 민족의 등불 역할을 한 우리 기독교도 혹시나 그러한 함정에 빠지고 있지나 않은지 항상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도록 들소리신문이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들소리신문의 헌신이 더욱 요청됩니다.


“구별된 소리로 40년간 사명 감당, 감사”

▣ 고용복 목사/신월동교회 원로 = 들소리, 곧 “광야에 외치는 소리”를 40년 보고, 듣고, 은혜 받으며 저도 신월동 교회를 개척하고 목양해온지 어언 45년이 되었습니다.
동시대 선배 동문 되시는 조효근 목사님께서 손수 창립하셨다는 “광야의 소리”를 처음 접하였을 때, 어쩌면 저의 가슴 속에 잠재해있던 사역을 대신해 주심에 대리만족하며 매주 기다리는 작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 복음소식지가 여러 곳 생겼지만 ‘들소리’는 구별된 소리여서 또 다른 감사와 애착을 느낀다고 많은 분들이 평가합니다. 배후에 섭리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금까지 40년 긴 세월 사명 가지고 쉬지 않고 사역해 오신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하며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그동안 기도와 물심간 협력해 오셨던 이사장님을 비롯한 운영위원님들과 좋은 글들을 써주셔서 진짜 “광야소리”가 되도록 수고해 주신 집필위원 여러분과 애독해 주셔서 힘이 되어 주신 세계교회 모든 목사님들과 성도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바라기는 이 거룩하고 복된 헌신을 지속해주셔서, 복음 실은 ‘들소리’가 지구 땅 끝까지 이르게 하므로 주의 나라 확장 사역에 더불어 승리하고, 주님 앞에 서는 날  맞는 우리 모두 상급되시기를 두 손 들어 축복하고, 축하하며 그날을 기대합니다. 샬롬!


“들 소리를 듣지 않으면 순수한 야성을 잃어”

▣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 = 40년을 걸어오셨군요! 성경의 오랜 신앙 관습으로 보면 무엇이 이루어지는 데 완벽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오셨네요. ‘들’에서 주님이 주시는 ‘소리’를 전하며 걸어오셨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며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공동체가 마땅히 있어야 할 들 또는 광야를 잊은 우리 시대에 들소리신문이 큰 일깨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걸어온 40주년이 감사요 은혜라면, 걸어갈 40년의 여정에는 설렘이 얼마나 클까요! 들 소리를 듣지 않으면 순수한 야성을 잃습니다. 광야의 소리를 대언하지 않는 모든 사역은 기독교 신앙의 변조입니다. 
지나온 길이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길에도 하늘 아버지의 가없는 은혜와 평강이 넉넉하길 기도합니다.


“가야만 하는 길, 그 길을 내어 주길”

▣ 서종로 장로/신림제일교회. 본지 증경이사장 = 쉽지 않은 길을 알면서도 걷는다는 것은, 걸어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들소리신문은 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길을 걷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라면, 그 길을 내는 것이 주님의 하실 일임을 알고 순종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모두가 편한 세상을 향해 가는 속에서 들소리는 가야만 하는 길을 제시해 주길, 그래서 향후 40년의 길을 매듭지을 때, 우리 모두는 또 주님을 향해 한없는 감사의 제(祭)를 올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묵히 주님의 길 따르는 이들의 동반자 돼 달라”

▣ 고병수 감독/기독교한국성결회 = 교단에 속하지 않고 모든 교회들을 아우르며 나아가는 선교언론지는 한국교회에서 드문 상황입니다. 특정 교단이나 특정인의 입장에서 나오는 신문들은 많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공교회성을 띠면서 균형을 갖고 보도하는 신문은 흔하지 않습니다.  
들소리신문은 바로 그런 선교언론입니다. 부족한 면도 있지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을 띠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뜻있는 이들의 기도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이 하나님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은 이 세상 속에서 그렇지 않음을 믿으며 묵묵히 주님의 길을 따르는 이들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당부합니다.  


들소리, 광야 소리  40년

▣ 이계황 회장/전통문화연구회 = 孔子는 40에 철(不惑)이 들었다는데, 나는 40에 교회 入門. 40년이 되어도 철들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1905년 왜놈의 족쇄에서 40년 되어서야 광복을 찾았고, 히브리人은 이집트 노예생활 400년 광야 고행(苦行)에야 고향을 찾았다. 
예수도 광야 苦行 40日. 내가 지금까지 죽을 병(病)에서 4차례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恩惠)가 아닌가!
우리 한국 개신(改新) 기독교가 광야의 백성을 살려주고 위로해줘 왔으나 보릿고개 넘기자 배 부르고 등 더워 오만과 비행이 넘쳐 하나님은 人을 찾고 있단다. 
한국교회는 내우외환에 대한 벙어리, 정치 야합(政治 野合) 세력, 설교(說敎)만 그럴듯한 위선(僞善), 소득 세금(稅金)을 거부하는 등은 루터의 종교개혁 전야(宗敎改革 前夜)와 방불하다 한다. 한국 개신교의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성경과 초대(初代)교회보다는 미국(美國)교회 모습에서 진화(進化)된 것이다. 美國 유학파 목회자 중심(牧會者 中心)으로 세계 유례없는 기복주의 부흥(復興)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대형교회 당회장은 신(神)의 권위를 뒤집어 쓴 제왕(帝王)이라 하고, 부목사는 노예 상황이라는 심정(心情)으로 자탄(自嘆)한다고 조사 발표되고 있다.
교회의 헌금(獻金) 봉투는 20 종(種)이나 만들어 기복(祈福)을 매매하고 있다. 이제 고행(苦行)으로 철든 ‘들소리신문’의 북과 징소리에 빛과 소금으로 혁명(革命)하여 앞으로 청정하고 희망찬 40년의 한국과 세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광야의 외침 계속 할 수 있도록 힘 모아줘야

▣ 전철한 대표/한국외국인선교회 = 들소리신문은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광야의 메시지로 한국교회에게 크게 외쳐 주셨습니다. 교회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신문사로서 듣기 좋고 격려되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쓴 소리, 책망하는 소리는 사명감 없이는 한국교회 앞에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오직 소명의식으로 한국교회가 잘못 가고 있을 때 질책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광야의 소리로 40년을 버텨왔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들소리신문의 역할이 더 필요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교회가 한국 사회의 리더 역할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회의 어두움과 부패를 막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독려하는 들소리신문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한국교회 전체가 들소리신문을 후원하여 광야의 외침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들소리신문의 앞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대와 교회가 ‘들어야 할 소리’

▣ 곽한영 목사/분당비전교회 담임 = 세상의 많은 소음에 눈과 마음이 끌리지 않고 신호를 분별하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독정론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는 들소리신문의 사명순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 땅의 작디작은 신앙공동체들의 아픔과 고통의 이야기를 긍휼의 마음으로 들어주며 품어주고, 위로해주는 그 따스함에 감사합니다. 
오늘날 만연된 영적 마비와 둔감의 상황 속에서도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영성있는 광야의 소리를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론 의사처럼 영적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간호사처럼 환자와 ‘함께 머물러’ 죽을 만큼 어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지켜보며 함께함에 감사합니다. 지면 곳곳에 성도의 신앙순례와 교회의 구원순례를 담아내며, 성도다움과 교회다움의 공동체성을 잃지 않고 우리들의 고난과 고통, 그 신음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작은 기쁨의 소식에도 크게 동감해주니 감사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른 신학적 질문을 가지고 이해하며 살아가도록 채근하며 용기를 주니 감사합니다. 
이 땅의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 간의 올바른 역사의식, 복음의식,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소통의 역할을 감당하니 감사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해, 창간 40주년을 맞이하는 들소리신문이 앞서 외쳐진 복음의 정수를 꿋꿋하게 넉넉히 지켜가며 전하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시게 하는 그 책임과 의무를 거뜬히 감당하는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들소리신문이길 거듭 축복하며 감사합니다. 


‘전복적’으로 생각하는 신문

▣ 배동석 성도(생명의 전화 교육위원, 홍익대학교 기숙사 행정실장) = 최근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실존 인물을 그린 영화인데, 그녀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에 관련 된 개념을 화두로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4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인류 초유의 비극이 발생한 것은, 히틀러와 그에게 동조한 사람들의 악만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 중간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수많은 사람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녀가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도 치열한 생각 없이 살아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 악에 가담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경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땅에서 들소리신문이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과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하나의 주간 신문으로서 그렇고 그런 발자취를 걸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황야에서 외치는 외로운 자의 목소리가 되기를 기꺼이 자청하면서 ‘넓은 길을 가지 않고 좁은 길을 가는 들소리’를 자임한 ‘들소리 신문의 정신’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생각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지금과 같은 올곧은 정론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40년의 시간을 발판 삼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 번 더 ‘전복적’으로 생각하는 신문, 한 번 더 ‘뒤집어서’ 생각하는 신문으로 성장해가길 응원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40년이 지난 80주년 때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더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달려가는 들소리신문이길 응원합니다.


들소리의 소명

▣ 나병호 성도 =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성경만을 외치며 가시밭 같은 들판에서 몸부림한 40년 아니! 77년, 이제는 휘어진 등허리가 굳어져 가는데 그 짐 대신 지고 갈 이 눈에 보이지 않는구나!
그동안 세상과 교계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포효하듯 외친 하나님의 말씀선포는 작은 가랑비 되어 세상에 스며들었고 만물의 소생에 보탬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단이니 돌연변이니 또 괴변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먹먹하고, 가느다란 물줄기마저 막혀 숨이 끊어지려 할 때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버틴 들소리의 소명은 영원히 계속되는 숙명을 따르리라….
작금의 흐트러진 교회사를 바로잡기 위해,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옳게 밝히기 위해 홀로 외로이 고군분투하신 대가는 어디 있는가! 누군가 나타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진실, 성경이 품고 있는 교묘한 진실, 꼭꼭 숨어 있는 하나님의 진실을 밝히는 날, 들소리는 그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해도 되리라….
시몬이 죽기 전에 아기 예수를 만났듯이, 사울이 예수님의 진실을 만나 거듭났듯이, 나사로가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목소리에 살아났듯이, 간절하게 찾고 기다리는 목사님의 인물 만남은 기필코 이뤄질 것이다.
장이 끊어지는 듯한 현실에서도 40년을 버텼듯이 오직 예수님의 진실한 음성을 세상이 알아듣고 바르게 바라보는 그날까지 들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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